난 이상주의자다. 늘 꿈꾸고, 늘 바라고, 늘 추구한다.

그러다 현실을 마주하면 참, 스스로 초라함을 느낀다.

현실 속에 나는 너무나 부족하고, 남들보다 모자라보이고, 늦은 시작에 따른 결과로

상대적인 부족함이 너무 많아보인다.

 

난 남들보다 참 느리게 시작했다. 꿈을 꾸고, 이상을 추구하면서 꿈을 쫓아 달려오다 보니 결국 중간에 넘어져버렸고

그 꿈을 내려놓고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내 또래보다 더욱 늦게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내가 봐도 아직 부족함이 많다.

그런 내가 또 다른 꿈을 꾸면서, 현실을 인지하고 현실과 마주치면서 나의 초라함과 다시금 느끼는 현실의 벽을 마주한다.

 

참 이럴땐 내 스스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건지? 이 현실에 굴복해야 하는건지?

이 현실을 마주칠수록 타개할 방법은 보이지 않고, 자꾸만 늘어가는 시련과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이 나를 지배한다.

 

때론 이 현실이 꿈이길 바라기도 하고, 내 꿈이 현실이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잔혹하게도 현실의 벽은 견고하고, 꿈은 여전히 내 안에만 존재한다.

 

나는 지금 이 현실에서 잘 선택하고 있는걸까? 내 선택으로 인한 다른 나비효과들이 안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진 않을까?

그저 나만 좋자고 하는 일이 되어선 안되는데, 적어도 최소한 내 선택과 해답들이 모두에게 좋은 결말이 되게 하고 싶은데.

내 욕심일까? 때론 내가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하는걸까? 이런 생각들이 나를 조금씩 조여오는 현실이 아쉽다.

 

이 이야기들의 끝은 어디일까? 이 이야기의 끝은 행복일까? 절망일까?

그냥 나 혼자만 상처받는거라면 좀 더 견뎌낼수 있을텐데, 그게 아니라면 내가 무너질거 같다.

어차피 혼자 상처받고 혼자 견디는건 해왔던 일들이라 할수 있는 일이지만, 나의 선택들로 다른이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그건 나에게 씻을수 없는 기억의 시간으로 자리 잡을거 같아서.

 

그냥 갑자기 다가온 현실의 벽을 느껴서 그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나의 선택들로 인해 여파가 미치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크나큰 미안함도.

괜찮다는 그 말조차 괜찮지 않게 느껴지는 이 현실이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이 모든 현실이 나에게 '넌 부족하니까 그냥 포기해' 라고 말하는 거 같이 들리고,

'더이상 상처 주지 말고 네가 포기해줘야 한다' 라고 말하는것 처럼 들린다.

 

그렇다. 현실적으로 잘 지내는 이에게 균열을 내고, 평범했던 일상에 헛된 꿈을 심어주면서 함께 고통을 받게 하는게 맞나?

이런 생각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현실속의 나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

 

부족한 사람이라, 아직 난 부족한 사람이기에 온전한 현실을 만들어줄수가 없다. 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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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그렇듯, 참 무모하다.

그냥 떄론 미치고 싶다. 뒤도 생각 안하고 순수하게 내 욕심만 바라보고 싶지만

참 그게 제일 어렵다. 내 욕심떄문에 수많은 상처들, 수많은 번뇌, 수많은 오류, 수많은 문제점 들이 야기되고

그로 인해 모든 상황이 복잡해지겠지만 서도 참 욕심이 난다.

 

뭐랄까, 난 여지껏 가지고 싶은걸 놓치려고 한 적은 없다.

물론 아쉽게 놓치면 어쩔수 없지 하지만 서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원체 살아온 삶이 기회가 오면 놓치면 끝이었던 삶을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놓치면 끝이다 생각으로 산다.

 

물건을 살때도 고민하다가 어떤기회가 온다? 그럼 바로 뒤도 생각 안하고 지르고.

일을 할때도, 이 타이밍이 기회다 싶으면 일단 저지르고 본다. 

 

그냥 모든 걸 결정할때 타이밍을 잘 본다. 이때 저지르지 않으면 분명 아쉬울꺼다. 라고 느끼는 순간 저지른다.

 

그래서 그런가? 점점 제어가 어려워지기도 하고, 때론 아쉬움에 잠식되기도 하는 상태지만

그렇기에 저지르고 또 성급한 판단에 후회할때도 있고, 뒷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어서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냥 저지른 그 순간 행복하고 뭔가 원천을 만들어낼수 있다면 그 상황을 외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때론 인생은 순간의 조화가 맞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은 무모해져야 할까? 그러지 말아야 할까? 라는 갈림길에서 고민중이다.

순수하게 내 욕심만 따라가야 할까, 모든게 맞을거 같지만 그러지 말아야 할까?

 

나 혼자 결정할순 없는 것이고, 나 혼자 좋자고 그럴순 없는 것들 투성이라...

참 막막하다. 이럴땐 혼자 정신세계 속에서 수많은 사투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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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거짓이 상당한 긍정적 효과를 보여준다.

 

이제 좀 하나 둘 익숙해진다. 조금은 패턴을 읽은걸까?

내가 어떤 호응을 해주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면 편안해지는지 , 좋아하는지, 긍정적인 반응이 오는지.

 

이제 좀 마스크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때에 어떤 반응에 어떤 단어에 어떻게 반응해주고, 어떻게 맞춤효과를 줘야 할지.

그래서 마스크에 대한 윤곽들이 보이기 시작해서 참 다행이다.

 

앞으로는 점점 마스크를 정교하게 다듬고, 좀더 내 본심이 아닌 맞춤형으로 위장한 답변을 열심히 생성해야 한다.

그래야 좀 더 상대에게 내가 잘 해낼수 있고, 나로 인해 좀 더 웃을수 있거나 편안하거나, 행복할수 있다면.

 

내 마음은 잠시 멀리해도 좋을거 같다.

그렇게 수많은 나비효과들로 인한 파장들이 얽히면

내 본심은 드러내지 않아도 상황이 알아서 내 본심을 숨겨준다.

 

헛된 꿈을 꾸면서 나는 꿈속에서 헤메더라도, 현실은 수많은 나비효과들이 지켜줄테니까.

현재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이자, 내가 해내야만 하는 과제가 되어버린 이상 그렇게 해야한다.

 

그래야 지켜낼수 있고, 또 언젠간 사라져줘야 할때 연기처럼 흔적없이 사라질수 있을테니까.

혼자 간직하기 위해서, 잘 담아내고 기억하며 추억할수 있길 바라면서.

 

당분간은 나비효과를 만들기 위한 마스크를 잘 만들어내야 겠다.

때론 이렇게 나를 숨기는게 효과적이고, 나를 지워내는게 오히려 나 이외엔 좋다는걸 느껴버려서

여기서 '나' 를 지우면 효과적이다 라는걸 체득한 이상 이렇게 결론이 난다.

 

어찌보면 서글프지만, 어찌보면 내가 좋아하는걸 지키기 위한 방법 아닐까?

그게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대가이고,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걸 지킬수 있다면

쓰다못해 아린 이 답 마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그렇게 거짓웃음은 수많은 나비효과를 통해 '나' 를 지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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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ful Red Line

from Text Art/Free Essay 2024. 10. 6. 07:41

 

몸살로 약기운을 빌려 누워있는 동안 수많은 생각의 고뇌에 잠겨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어떤 상처를 받아도, 그 어떤 괴로움 속에서도 그 사람이 좋다.

 

드라마를 보는데 계속 떠오르는 대사가 있다.

 

'내가 많이 사랑한다고 하는 말을 마치 니가 날 함부로 해도 된다는 말로

오해하는 건 아니지? 만약 그렇다면 그러지마.'

 

이 말은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모두에게 형용되는 말 같다.

사랑의 크기와 사랑의 종류를 떠나서, 한 사람으로 존중해주고 한 사람으로 배려해주면서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때론 상처를 주고 받아도.

그 상처까지 아물게 해주며 함께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나가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붉은 실, 이건 참 어떻게 보면 옛 이야기 같지만, 어느정도 인간의 감정선 같다.

저 붉은 실이 끊어지면, 인연이 끊어진다 라는 말.

난 여지껏 수없이 내가 그 선을 잘라냈다. 그 인연과 나의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닌거 같아서.

때론 그 길에 온갖 지뢰만 있어서, 가시만 돋아 있어서, 자갈만 깔려있어서.

그 길을 걸어오며 나를 마주하면 온갖 상처투성이에 치유되지 않고 흐르는 피만 남아서.

 

그래서 난 더욱 조심스럽다. 내 인연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다 보니 결국 사랑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고, 더욱 예민해지고, 더 욕심 나는 것 같다.

 

이걸 줄여야 할까? 그저 난 맘편하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을 뿐인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말들을?

난 모르겠다. 내 마음이 향하는 방향은 전혀 달라서.

내가 최고의 사랑이라 여겨 긴 시간 고민과 주시속에서 사랑하게 되었고

오로지 그 한사람이 좀 더 내 마음을 알아주며 그 안에서 행복하길 바랄뿐이었는데

그게 부담이 되는걸까? 아니면 내가 욕심을 크게 낸걸까?

얼떨결에 내가 살짝 부정당한 느낌이 들어버렸다.

 

그럼에도 난 저 붉은 실을 지키기 위해 부여잡고 있을것 같다.

행복함과 그리움, 사랑으로 가득채워도 모자랄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인데...

 

그저 난 함께, 남은 시간 핑크빛 꽃길로 채우고 싶을 뿐이다.

때론 그 길 위에 피하고 싶은 오물도 있을거고, 보기 싫은 장애물도 종종 있겠지만.

함께 그 길을 걸으며 만들어 가고 싶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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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 Away

from Text Art/Free Essay 2024. 10. 5. 09:39

 

 

때론, 숨어있는게 편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감정을 비추지 않고 아무런 표정 없이 가만히 있는게 편안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할수 있게, 나는 그 어떤 답도 주지 않는게 편하다.

 

어차피 멋대로 재단하고, 멋대로 추측하고, 멋대로 생각할테니까.

 

하지만 그게 그들 멋대로 만든 이미지 라는걸 아니까.

 

그게 내가 아니라는 걸 난 아니까, 어차피 난 나대로 존재하기에.

 

때론 난폭하기도 하고, 떄론 잔인하기도 하고

때론 친절하기도 하고, 때론 조용하기도 하고

때론 차가워지기도 하고, 때론 뜨거워지기도 하고.

 

어차피 난 남들과 다른 사이클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

그냥 그렇게 난 나의 바람을 타고 , 나의 길을 흘러가는 수밖에.

 

그냥 있는 그대로 쏟아내고 싶었을 뿐이었고, 그저 남들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으며

그저 남들보다 표현이 달랐을 뿐이고, 좀 더 상처 깊은 유리감정 위에 강철을 두른 거뿐이었으니까.

 

그 충격의 여파는 강철 속 유리감정에 균열을 일으키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할수 있게 만들수 있으니까.

 

수많은 내 안에 충격의 여파는 그렇게 균열들을 내어가면서 잠잠해진다.

그렇게 표정이 굳어지고, 생각이 단순해지고, 감정이 고요해진다.

잔잔한 호수처럼, 조용히 흘러간다.

 

그렇게 잔잔한 호수의 표면 처럼 , 표면 아래 속에 흐르는 격랑처럼.

나의 느낌은 그렇듯 흘러간다.

 

저 가면처럼 난 무표정에 입은 스마일을 유지한다.

그게 내가 극도로 냉정해질수 있는 최상의 상태이자, 내 머리속에 이미 결론을 내어가고 있다는 신호일 뿐이고.

그 모든 해답은, 내 안에서만 존재할테고 아무도 모를테니까.

 

그렇게 뼈 속에 각인시켜두고 간직하고 있는게, 유일하게 내가 할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 내 답을 알려면 내 뼈째 뜯어가서 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모르게 할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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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

 

좋아하는 것엔 끊임없이 내 모든걸 쏟아내고

싫어하는 것엔 끊임없이 내 모든걸로 밀어내는

 

이 모든것의 끝에 남는건 오로지 나 하나 뿐이라는걸 잠시 망각했던걸까?

이 모든것의 끝에 남는건 오로지 수많은 경험 속 불신밖에 없다는걸 잊어버린걸까?

 

멍청하게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었는데, 난 그걸 초월했으리라 믿었는데.

여전히 난 망각의 동물 그 자체였다는걸 깨닫는다.

 

자각해버린 이상 다시 하나씩 쌓아 올려야 한다.

내 스스로 허물어버린, 나를 지켜줄수 있는 방호벽.

아무리 좋아도 그저 그런척, 아무리 싫어도 그저 그런척.

모두에게 그저 그런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저 남의 일인만큼 영향받지 않은 척.

괴로운 것도 혼자 감내하고, 슬퍼도 혼자 감내하며,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혼자 감내하고

아무리 좋아서 웃음이 나더라도 절대 내보이지 말아야 할것.

 

그건 나의 모든 감정선의 변화다.

 

때론 그 모든걸 쏟아낸다고 좋아하는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론 나 혼자 광대가 되어가고 있다는걸 모르는게 아닌데.

어차피 모든 인간은 나와 다른 선을 걷는다는걸 잊으면 안된다는걸 스스로 그렇게 되뇌었거늘.

 

여전히 난 자라나지 못했다. 내가 목표로 한 극한의 인간이 되어야 했거늘.

다시 한번 되새긴다. 나는 결국 어차피 섞이지 못할거라는걸.

다시 한번 다짐한다.

 

왜 내 성벽을 허물었을까, 왜 내 감정을 내보였을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왜'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나는 고뇌라는 고통속에 잠식된다.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해 또 다시 나는 성장한다. 그리고 견고하고 높은 벽을 한층씩 쌓아간다.

 

쏟아내느니 못한 결과를 받아들고, 쓸쓸한 내 뒷모습을 마주하고서 알아채버린 망각.

 

그러고보니 예전 심리상담에서 나의 그림은 항상 울타리와 벽이 상당히 높았고.

그 안에 작은 틈을 통해 세상을 엿보곤 했었는데 왜 여러 말에 휘둘려 그 벽을 허물고 세상을 거닐려고 했을까.

어차피 그 세상은 나의 세상이 아니라는걸 알았으면서...

 

나의 세상은 벽 안에 존재하는걸 알고 있었으면서.

 

넘쳐 흐르니만 못한 , 엎질러져버린 모든걸 바라보면서 다시 어떻게 주워담을지 고민하는 나를 바라보며

'정말 멍청하다.' 라는 말만 되뇌이게 된다.

 

몸살이 오고, 두통이 심해지며 다시금 온몸이 부셔지는듯 하다.

이 또한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 못하고 잠식되어버린 듯 고통으로 다가온다.

결국 진통제와 휴식이 필요한 시점. 그 시간동안 난 고뇌속에서 거닐어야 겠다.

 

그리고 나의 벽이 되어주었던 가면을 다시 쌓아줘야 겠다.

오로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내가 나로서 세상속에서 버텨낼수 있도록.

결국 모든 나의 것은 가면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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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함, 크나큰 행복함이 다가올수록 다가오는 크나큰 상실감.

 

한걸음씩 다가갈수록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데서 오는 크나큰 행복함.

 

온전히 내 것이 될수 없다는 것,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될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그렇게 다가오는 크나큰 상실감.

 

이 모든건 행복과 불행은 양면에서 함께 다가오기에 너무나 혼란스럽다.

나도 알고있다. 쉽지 않다는것. 아니 바랄수록 괴로운건 나 뿐이라는걸.

 

그렇지만 나도 인간이기에 욕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점점 행복함이 느껴지니까. 그걸 내 소유로 하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 그런다고 될수 없는걸 아니까, 어떻게 보면 모래성 같은? 느낌이니까.

단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릴걸 알아서 그런가?

 

그래서 지금은 그냥 단순히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려고 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욕심을 부리고 미래를 생각할수록 나 혼자 그런 미래를 바랄수록

그려낼수록 망쳐가는거 같으니까.

 

그냥 지금은 바랄뿐이다. 같은 그림을 그려낼수 있기를.

아니... 이런 나에게 그런 희망은 사치가 아니라는걸 알려주기를.

 

솔직히 크게 바라는거 없다. 그냥 함께 그려낼수 있는 시간의 그림을 같이 그릴수 있길 바랄뿐이다.

행복함만이 가득한 시간의 그림을 채우고, 그 안에 남겨진 그림자같은 상실감과 불행을 함께 지워나갈수 있길.

 

,

관통 2

from Text Art/Free Essay 2024. 10. 1. 09:03

 

그저 난 내가 할수 있는 걸 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끝을 바라보고 간다면, 수긍 하는게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것에 수긍하고 내가 할수 있는 한 사랑을 쏟아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저 내가 할수 있는걸 내가 관통당한다 해도, 그 관통상으로 모든게 쏟아져 내린다 해도.

내 안에 모든게 사라질때까지, 내가 쏟아낸 후에 후회가 없을만큼.

 

그럼에도 난 내가 좋아하는 걸 놓치기 싫어서, 수많은 관통상을 거쳐서 내 안에 모든걸 쏟아낸 후에서야

그러고도 기어서라도 난 가겠지만, 그 모든것이 끝나게 된다면 그건, 끝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니면 내 모든걸 부정당하는 시간? 그건 모르겠다.

 

수없이 많은 단어의 향연들 속에 관통 당하는 나의 마음은 늘 묵묵히 아프다는 신호도 주지 않은체

가만히 존재할 뿐이다.

 

그건 내가 그만큼 인내 할수 있게 된 수많은 상처와 시련들 속에 견뎌낸 부산물이자 전리품이고.

떄론 인내가 편하다. 그저 상대를 안심시키고, 상대가 편하도록 만들어주고, 조금이나마 나로 인해

마음을 채울수 있었다면 그거 하나로 만족하려고, 더는 욕심 내지 않으려고.

 

내가 욕심을 내는건 사치니까.

내가 할수 있는건, 할수 있는 만큼 쏟아내고..

사라져 달라 할때 조용히 사라지는 것.

 

내 욕심을 부리는건 온전히 내 것이 될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때 뿐.

,

 

내가 제일 받아 들이기 어려운 말은...

The End, 끝, 헤어짐 이다.

 

일단... 무엇보다 정해진 끝을 향해 달린다는 거. 정말 괴롭다.

어차피 끝은 정해져있는데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을 끝없이 되뇌이며 동력을 상실한다.

결국 난 그렇게 스스로마저 놓아버릴 생각을 하며 끝을 맞이한다.

 

그러고 보니 난 예전부터 헤어짐을 말하는 사람과 트러블이 심했다.

쉽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사람, 쉽게 헤어짐을 생각하는 사람.

결과적으로 나의 궁극적인 질문은 '그럼 지금 헤어지는것과 그때 헤어지는것과 다른게 뭐야?'

라는 그 질문에 해답은 나오질 않았고, 난 그자리에서 헤어짐을 결론짓고 떠난다.

 

어차피 상대방은 나와 Ending을 준비하는데 나에게 Ending 은 거기서 끝이다. 뒷 이야기는 더이상 없다.

끝나는 마당에 1분 1초라도 빨리 끝내주는게 상대방을 위해서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차피 상대방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끝난 이야기를 붙잡고 회상하는건 나 뿐이다.

 

결국 그 끝난 이야기 속에서 나는 End란 단어를 상기하고...

Ending, 끝. 그 말은 나를 주저 앉히고, 나의 마음을 산산조각 내는 단어다.

수많은 끝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조합이 들리면 어느샌가 난 산산조각 난 체로 끝을 내버리곤 사라진다.

 

과거엔 그 Ending 을 위해 잠수를 타고, 모든 나의 연락처 , 메신저, 메일주소

하다못해 나 혼자 글을 쓰던 공간들 까지 싹 다 지우고 세상에 없었던 사람처럼 그대로 증발해 버리곤 했다.

 

항상 그 짓을 하다보니, 친한 지인들은 내가 사라지면 '저거 또 세상하고 단절하려 든다. ' 라며  어떻게든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속에서 날 붙잡아 줄 사람들 마저 세상을 떠나고 없다. 이젠 날 붙잡아 줄 존재마저 없는 세상인데.

미련없이 떠난다면, 아마 누구도 날 찾지 않을것이다. 그렇게 난 없었던 것처럼 잊혀지는 존재가 될수 있게 되었다.

 

그냥 참, 그렇다.

누군가에겐 가볍게 들릴 그 말이 나에겐 왜 이리 세상과의 단절을 바라는 말처럼 다가오는지.

난 그냥 단순히 내가 할수 있는 모든걸 다 해주고, 나와 함께 즐겁게 꿈꾸며 세상을 여행하길 바라는 것이지만.

그게 또 어떻게 보면 10대 , 20대 처럼 순수한 무책임속에 허황된 꿈처럼 들릴수 있겠거니...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그렇다라는건 참 난 여전히 꿈속을 헤메는 처지라는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낭만주의적 사고속에서 성숙되지 못한 존재가 되버린 것일까?

 

그냥 내가 세상속에 얼마나 궤를 벗어난 존재이고, 의지가 되지 못하는 세상이 평범하다고 규정한 틀에 부합되지 않는

얼마나 가볍고 하찮은 존재인지 자각하게 만든다.

 

하나... 둘... 내려놓다 보니 이젠 나 스스로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모든걸 버려두고 그냥 휙 사라지고 싶은. 그렇게 ' The End' 라는 단어와 함께 커튼 속 어둠으로 사라지고 싶은 밤이다.

 

여전히 난 꿈속에 살고 있는 멍청한 존재다.

그런 멍청한 존재의 낭만은 항상 '끝' 이라는 단어 속에서 산산조각 난체로 묻혀가고 있다.

,

 

상상은 정말 무섭다.

아니... 상상속에 빠져있는건 너무나 괴롭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마음 속 깊이 각인 되어 갈수록.

온전히 나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더 알수록, 그 이상은 내가 범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갈수록.

 

생각의 꼬리는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내가 애써 덮어두었던 상자를 하나씩 열어가면서

내가 애써 덮어두었던 마주치기 싫은 현실과 상황들을 내게 알려주면서

하나 ... 둘 ... 나에게 사실관계를 알려주면서 나를 끝없는 어둠 속에 밀어 넣는다.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상실감.

온전히 내 시간이 아닌 것에 대한 절망감.

 

그 안에서 작아지는 나의 존재감.

 

차라리 모르는게 나았을지도 모르는 현실을 매 순간 머리속을 스쳐 흐르는.

 

내 안에 두가지 '나' 는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걸까...

내가 끝없이 산산조각 나버리길 바라는 걸까?

내가 절망의 어둠 속에서 나오지 않길 바라는 걸까?

 

손안에 작은 빛 하나를 쥐고 이 끝없는 어둠 속을 거닐며 , '희망' 그 단 하나만 바라는 것 조차 사치인걸까?

 

상상속 괴물들은 나를 끝없이 상처내고, 끝없이 찔러가며 내가 쓰러지길 바라는걸까?

 

한조각, 한조각 부셔진 나를 움켜쥐고 단 하나의 희망을 간직한 체 아직은 헤메고 있지만.

어디까지 내가 부셔져야 이 상상의 괴물은 나를 놔줄까...

매 순간 한번씩 나를 무너뜨리며, 어디까지 할수 있는지 나를 시험하는걸까?

이미 수 차례 절망속에서 기어나와서 겨우 버티고 서있는 나에게 도대체 상상속 괴물은 어디까지 내가 빠지길 바라는걸까?

 

수많은 물음표 살인마들이 나에게 다가와 옥죄며 자문자답 속 지옥에 나를 빠트린다.

'넌 어디까지 이해하고, 넌 어디까지 수긍하고, 넌 어디까지 참을거야?

그런 가운데 내가 던질수 있는 질문은 하나...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래? 더이상 뭐를 어떻게 더 해야 하지?'

 

상상속 괴물과 끝없는 밤을 지새우게 되는 현실이다.

그저 난 단 하나의 희망만 손에 쥔 채 부셔져가는 나를 하나 둘 모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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